ABOUT FULLER
풀러 한국어 프로그램
비전과 목표
풀러신학대학원은 복음주의적이고 초교파적이고 국제적인 학교로서,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 전 세계의 남녀 일꾼들을 다양한 사역으로 준비시키는 일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풀러신학대학원은 세 개 대학원의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영적 성장을 경험하고, 교회 예배와 사회를 위한 봉사를 위해 더욱 철저히 훈련되고, 다양한 학문 연구를 통해 그리스도를 섬기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제자를 삼고, 교회를 갱신하고, 사회의 도덕성을 추구하며, 세계의 평화와 정의를 구현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을 중요한 비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설립
풀러신학대학원은 1947년에 저명한 라디오 복음전도자였던 찰스 풀러(Charles E. Fuller)와 보스턴 지역의 목회자였던 헤롤드 옥켄가(Harold John Ockenga)에 의해서 설립되었습니다. '풀러'라는 이름은 미국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상당한 기독교적 영향력을 끼친 한 신실한 평신도 기독교인 헨리 풀러(Henry Fuller)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풀러신학대학원은 ATS (북미신학교협회)와 WASC (미서부지역학교협회)라는 두 검증 기관의 정회원으로서, 신학대학원의 모든 프로그램은 위 두 기관이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풀러신학대학원은 개교 68주년을 맞는 2015년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성장과 발전을 거쳐 현재 북미주에서 가장 많은 목회자, 선교사, 그리고 전문 복음사역자를 배출하는 최대 규모의 신학교 중 하나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총장
Harold John Ockenga (1947-1954 and 1960-1963)
초대 총장 옥켄가 박사는 패서디나에서 총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보스턴에 위치한 역사적인 파크 스트리트 교회의 목회자로 계속 봉사하기 위해 셀 수 없이 대륙을 횡단해야 했습니다. 분명한 언어 구사력과 훌륭한 학식을 지닌 옥켄가 박사는 학문의 탁월성을 강조하는 풀러신학대학원에 전통에 튼튼한 기초를 놓았습니다. 옥켄가 박사는 특히 복음주의를 이끌어 가던 학자로서 풀러신학대학원의 설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사회 전반의 문화와 소통하면서 비판적인 사고와 사회 참여를 이끌어 냈던 그의 입장은 후에 풀러신학대학원을 규정 짓는 특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Edward John Carnell (1954-1959)
2대 총장인 에드워드 카넬 박사는 전임으로 거주하며 직임을 수행한 첫 총장입니다. 통찰력 있는 변증학자이자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교수였던 카넬 박사는 당시 근본주의 운동에 대해 엄정한 지성을 가지고 대응하면서, 학문적이면서 동시에 신학적 정통성을 유지하는 새로운 기조를 형성했습니다. "신학교의 영광"이라는 제목의 총장 취임 연설은 당시에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지만 오늘날 풀러신학대학원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온건하고 관용적인 복음주의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1957년 그의 임기 중 풀러신학대학원은 미국 신학교 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Theological Schools)로부터 완전한 인가를 받았습니다.
1959년 카넬 박사는 가르치는 일과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 총장직을 사임했고, 1대 총장이었던 옥켄가 박사가 임시 총장직을 맡았습니다.
David Allen Hubbard (1963-1993)
3대 총장 허버드 박사는 35세에 총장에 취임해서 삼십여 년 간 학교를 이끌었습니다. 당시 복음주의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있던 상황 속에서, 허버드 박사는 풀러의 입장을 '에큐메니컬 실험'이라 부르며 다양함 속의 일치를 이루어내려고 애썼습니다. 1960-70년대 성서 무오성과 관련한 격렬한 논쟁 속에서 허버드는 풀러라는 배의 진로를 노련하게 인도하며, 성서의 권위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에큐메니컬, 복음주의, 자유주의, 보수주의 등의 다양한 관점을 인정하고 서로 대화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허버드 박사의 재임 기간 동안 기존의 신학대학원에 더불어 심리대학원과 선교대학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세 대학원 모두 1969년 미서부 대학 협회 WASC(Western Association of Schools and Colleges)의 인가를 받았습니다. 또한 허버드 박사의 지도 하에 작성된 풀러의 'Mission Beyond the Mission' 선언문은 폭넓은 범위의 윤리, 도덕 문제들을 성경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Richard J. Mouw (1993-2013)
4대 총장 리처드 마우 박사는 복음에 기초한 탁월한 성서 신학에 전념하는 한편, 복음주의로서 공공 영역에 참여한다는 풀러의 소명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마우 박사는 복음주의 기독교의 존경받는 지도자로서, '신념 있는 시민교양(convicted civility)'으로 함축되는 대화를 통해서 신앙과 문화 사이의 단절을 잇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마우 박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서의 풀러의 색채를 확립시켜서, 세계 곳곳의 학생들과 다른 신앙 전통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면서 새로운 이해를 창조해내는 곳이 되도록 했습니다.
마우 총장의 재직 기간 동안 상당한 성과들이 있었는데, 여러 연구소와 기구들의 설립이 그 중 하나입니다. 예배, 신학, 예술을 통합하는 Brehm Center, 리더쉽을 연구하는 Max De Pree Center, 그리고 Fuller Youth Institute 등이 설립되었으며, 그 외에도 세계 곳곳에 수많은 협력관계가 맺어졌으며, 풀러의 여러 지역 캠퍼스에서 새로운 학위 과정이 시작되었고, 온라인 교육 과정이 추가되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패서디나 캠퍼스에는 David Allan Hubbard 도서관, Chang Commons 기숙사, Student Servies Center 등이 세워졌습니다.
Mark Labberton (2013-현재)
5대 총장 마크 래버튼 박사는 2013년 7월 1일에 취임했습니다. 래버튼 박사는 지난 삽십 여년 간 목회 영역에서 봉사했는데, 그 중 16년은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에 위치한 First Presbyterian Church에서 담임 목사로 섬겼습니다. 이후 2009년 래버튼 박사는 풀러 교수진에 합류해서 수업과 동시에 Lloyd John Ogilvie 설교 연구소를 이끌었습니다. 래버튼 총장은 '긴박한 복음의 선포 (Proclaiming an Urgent Gospel)'라는 글에서 풀러의 미래를 향한 자신의 열정적인 비전을 표현하길, 자유와 기쁨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끌어안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조직
신학대학원 (School of Theology)은 풀러의 세 대학 중 가장 먼저 1947년에 설립되었습니다. 1970년에는 MA 과정이 시작되어서, 평신도들이 교회 내에서 더 폭넓은 역할을 감당하도록 구비시키는 일을 돕기 위해 신학 교육의 범위를 확대시켰습니다. 또 1970년대에는 소수 인종 목회자들을 위한 신학 교육 프로그램도 개쳑했습니다. 그 외에도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 분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MA와 MDiv 학위 내에 다양한 교육 과정과 집중분야 제도를 개발해왔습니다. PhD와 ThM 학위는 1970년대에 시작되었는데, 1988년 설립된 현재의 Center for Advanced Theological Studies (CATS)를 통해 보다 전문화된 신학 프로그램이 조직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학대학원은 많은 연구소, 센터, 운동 등을 개발해서 변화하는 교회의 필요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신학대학원은 1995년 김세윤 교수의 리더십 하에 한인목회학박사과정을 시작하여 지난 20여년 간 한국과 미주한인교회 목회자들의 연장교육에 힘써왔으며 2015년 가을학기부터는 신학 문학석사 한국어 과정을 통해 평신도 리더들의 영적 성장과 신학교육을 돕고자 합니다.
선교대학원 (School of Intercultural Studies)이 처음 구상된 것은 1964년으로, 풀러는 당시 세계 복음화를 위한 훈련 과정의 필요성이 점점 커져가는 상황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성장 연구소의 설립자인 도널드 맥가브란 박사에게 초대 학장직을 요청했고, 1965년 세계선교대학원 (School of World Mission)이라는 이름으로 선교학 석사 과정을 개설했습니다. 이어서 1970년에는 DMiss 학위 과정이, 1976년에는 PhD 학위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2003년에는 대학원의 이름을 현재와 같이 변경했는데, 이는 급변하는 국제 관계 속에서 본래 이름이 사역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많은 졸업생들의 우려를 반영한 결정이었습니다. 현재 선교대학원은 여러 석박사 학위 과정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들은 학생이 어느 지역에 있든지 사역지를 떠나지 않고 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조직되어 있습니다.
심리대학원 (School of Psychology)은 1964년 Pasadena Community Counseling Center로 시작되어, 1965년 초대 학장인 리 에드워드 트래비스 박사의 지도 아래 29명의 신입생이 등록했습니다. 1972년에는 미국심리학협회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가 심리대학원의 임상 PhD 과정을 승인했는데, 이로써 APA가 인가한 최초의 신학교 기반 심리대학원이 되었습니다. 1987년에는 두 번째 박사 학위인 PsyD 과정이 추가되었고, 본래 신학대학원에 속해있던 '결혼과 가정' 석사 과정이 심리대학원으로 편입되었습니다. 1991년에는 리 에드워드 트래비스 연구소가 설립되어 행동 과학의 다양한 주제들을 교수진과 학생이 주축이 되어 연구하고 있습니다.
인가
풀러는 미국 내 대학교의 교육 수준을 높이기 위해 설립된 검증 기관인 북미신학교협회 ATS (Association of Theological Schools)와 미서부대학협회 WASC (Western Association of Schools and Colleges)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은 교육기관입니다.